민주주의의 반대편에 놓인 체제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는 흔히 같은 말로 섞여 쓰이지만 정치학에서는 정도의 차이를 지닌 별개 개념으로 다룹니다. 권위주의는 권력 유지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와 군부·사회경제적 엘리트의 지지 기반으로 특징지어지고, 전체주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를 정부가 통제하는 체제로 규정됩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그 종착점이 늘 전체주의인 것은 아니며, 권위주의로의 퇴보가 훨씬 흔한 경로라는 점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왜 하나로 정해지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을 찾을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두 단어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입니다. 문제는 이 둘을 완전한 동의어로 보면 체제의 성격을 놓친다는 데 있습니다. 위키백과 한국어판 '전체주의' 항목은 정치학에서 전체주의를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정의합니다. 즉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가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놓인 정도 차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각 체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체주의가 카리스마적 독재자와 고정된 세계관을 특징으로 한다면, 권위주의는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로 특징지어집니다. 또한 권위주의 독재자는 군부나 사회경제적 엘리트로부터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구분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나무위키 '권위주의' 항목은 권위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체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완화된 모습을 보인다고 서술합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일부 수용하거나 적어도 존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도 같은 맥락입니다.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두 체제의 차이를 한눈에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항목은 위키백과 한국어판 '전체주의' 항목의 서술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구분 항목 | 권위주의 | 전체주의 |
|---|---|---|
| 정치학상 위치 | 독립된 체제 유형 |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 |
| 지도자 성격 | 권력 유지형 독재자 | 카리스마적 독재자 |
| 통제 범위 | 정치 영역 중심 | 사적 영역까지 전면 통제 |
| 지지 기반 | 군부·사회경제 엘리트 | 대중매체 결합 선전선동 |
| 반대 세력 | 제한적 수용 가능 | 존재 자체를 불허 |
전체주의의 통제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는 정의 자체에 드러납니다. 전체주의 정부는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국가의 정치경제, 교육제도, 예술과 과학, 시민들의 사적 도덕까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한다고 규정됩니다. 반대 정당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 반대 세력을 극심하게 탄압하는 것도 이 정의에 포함됩니다.
반면 권위주의는 민주주의 제도를 형식적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거 제도나 의회가 존재하더라도 권력의 실질적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식입니다. 제도의 껍데기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뚜렷이 갈립니다.
전체주의라는 단어는 어디서 시작됐나
'전체주의'라는 말은 1920년대 이탈리아 왕국의 파시스트 정부를 가리키는 데 처음 쓰였습니다. 무솔리니는 1920년대 초반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조반니 아멘돌라가 무솔리니와 추종자들의 정치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토탈리타리스모'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개념 자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됐지만, 학자마다 정의가 달랐습니다. 전간기와 냉전 초기에 이 개념은 주로 서방 정치학계에서 스탈린의 소련 체제와 히틀러의 나치 독일 체제를 비교하고 그 공통점을 설명하려고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비판도 따라붙습니다. 최근에는 소련이 과연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였는지, 나치 독일조차 개념화된 전체주의에 얼마나 들어맞는지를 둘러싼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1950년부터 관변 학파인 '전체주의 학파'를 구성해 기업가 및 경영인 단체의 후원을 요청했다는 점, 이 학파의 분석이 학술적 근거보다 정치적 논리 위에 서 있었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는 서술도 같은 항목에 담겨 있습니다.
학자들은 전체주의의 핵심을 어디서 찾았나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의 핵심을 역사주의와 독단주의로 보았습니다. 그 씨앗을 플라톤에게서 찾고,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가 근대 전체주의 사고의 태두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을 가장 강력한 전체주의 정권으로,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이론적 정교함이 부족한 열화된 전체주의 정권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현대 학자들은 포퍼의 비판이 인식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는 탁월하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가 얕다는 단점이 공존한다고 봅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에르네스트 만델은 포퍼가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변증법에 무지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제 구조에서 전체주의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집산주의가 일반화되면 그 경제적 오류와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다시 급진적 집산주의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대중을 정치·경제적 불구자로 만든다는 논지입니다. 계획 경제가 이루어지려면 국민의 생산 수단이 집산화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재산권이 박탈되는데, 그러한 박탈이 '평등' 실현이나 '복지 사회' 건설의 수단으로 선전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의 특징을 규정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대중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 주체가 아니라 거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지는 도구가 되며, 스스로 그러한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분석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경로로 무너지는가
권위주의 체제는 대개 혁명이나 쿠데타 같은 단절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보를 통해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서술됩니다. 이미 작동하던 민주적 절차가 하나씩 무력화되면서 권력이 한곳으로 모이는 방식입니다.
권위주의 국가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더 나쁜 건강 결과를 보인다는 서술도 같은 항목에서 확인됩니다. 통제가 강화될수록 공적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전체주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체주의가 민주주의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한 학자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브레진스키 같은 학자의 이름이 함께 언급됩니다. 민주주의와 완전히 단절된 이물질이 아니라, 민주주의 내부의 동력이 왜곡되며 나타나는 결과라는 시각입니다.
체제를 판별할 때 실제로 확인할 항목
개별 국가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가늠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항목은 앞서 인용한 정의들에서 도출한 판별 기준이며, 특정 국가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 반대 정당의 존재가 허용되는지, 허용된다면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지
- 통제 범위가 정치 영역에 머무는지, 교육·예술·과학·사적 도덕까지 확장되는지
- 지도자의 권력 기반이 군부·엘리트 지지인지, 대중매체와 결합한 선전선동인지
- 재산권 제한이나 생산 수단 집산화가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되는지
- 민주적 절차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지, 아예 제거됐는지
이 기준들을 하나씩 대입하면 권위주의적 요소와 전체주의적 요소가 한 국가 안에 뒤섞여 나타나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개념이 스펙트럼 위에 있다는 정의 자체가 그런 혼합을 전제합니다.
Q.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는 같은 말인가요
아닙니다. 정치학에서는 전체주의를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정의합니다. 정도의 차이이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Q. 전체주의는 언제부터 쓰인 용어인가요
192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됐습니다. 무솔리니의 발언을 묘사하려고 조반니 아멘돌라가 '토탈리타리스모'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Q.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항상 전체주의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권위주의 체제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통해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서술됩니다. 전체주의는 그보다 극단으로 치달은 경우입니다.
Q. 전체주의 개념 자체에 비판도 있나요
있습니다. 소련이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였는지, 나치 독일조차 개념화된 전체주의에 얼마나 들어맞는지를 둘러싼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