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하면 보통 세방낙조와 진돗개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 뒤에 숨은 산이 있다. 지산면에 자리한 지력산(328m)은 암릉과 조망이 뛰어나면서도 등산로조차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찾는 사람이 드물다. 촛대바위, 빼족산, 해산봉, 돔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은 "왜 여태 몰랐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코스다.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 40분, 차로는 3시간 안팎이면 닿는 거리라 당일치기나 1박 2일 산행으로 제법 그럴듯하다.
세방낙조 전설 속 동백사, 그 터를 찾아서
지력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동백사 스님의 전설이다. 세방낙조를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동백사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절을 찾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노한 하늘이 벼락을 내렸고, 스님의 몸은 산산조각 나 바다에 흩어졌다.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 바지는 하의도, 윗옷은 상의도, 장삼은 장삼도가 됐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각각 주지도와 양덕도가 됐다고 전해진다. 심장이 떨어진 곳이 바로 불도다.
동백사는 고려 초에 창건된 절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진도군 향토유적 3호로 지정돼 있고, 작은 안내판이 절터였음을 알려 줄 뿐이다. 등고선과 지형을 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해발 200m 지점의 암벽지대 아래쯤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위치에서 서쪽으로 10시 방향을 바라보면 소장도, 장도, 가사도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정말 황홀할 만한 자리다. 스님이 수행을 잊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력산 등산코스, 가시덤불을 뚫고 만나는 암릉의 맛
지력산은 정식 등산로가 없는 산이다. 이정표나 안내판을 기대하면 안 되고, 표지기와 산행 지도를 꼭 챙겨야 한다. 들머리는 작은와우저수지로, 입구에 빛바랜 '지력산' 입간판 하나가 전부다. 차단기를 지나 지그재그로 임도를 따라가면 2km 지점에 첫 번째 기상관측탑이 나오고, 여기서 왼쪽으로 20m쯤 가면 칠선녀 폭포 상류인 '용둠벙'이 있다. 둠벙은 깊게 파인 웅덩이를 뜻하는 사투리다.
정상을 향한 길은 두 번째 기상관측탑이 있는 임도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서면 시작된다. 굴참나무에 듬성듬성 묶인 표지기를 따라 30분쯤 오르면 정상인데, 표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정상을 지나면서부터가 진짜다. 하늘을 뒤덮은 잡목과 청미래덩굴, 가시나무가 발목을 잡기 때문에 긴팔 옷차림을 단단히 해야 한다. 실제로 이 코스를 답사할 때는 전정가위로 잔가지를 잘라가며 길을 만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험한지 짐작이 간다.
- 산행 거리: 작은와우저수지-산림생태관리센터 약 9.3km
- 소요 시간: 5시간 30분 안팎
- 준비물: 전정가위(선택), 긴팔·긴바지, 장갑, 표지기 확인용 지도
- 주의점: 가시나무와 청미래덩굴이 많은 구간이 있어 계절보다는 복장이 중요
300m 봉에 오르면 그동안의 노고가 보답받는 듯 탁 트인 조망이 기다린다. 지력재까지 크고 작은 암릉을 타고 넘는데, 방향만 맞으면 발 닿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이 구간은 말 그대로 근육질 암릉의 연속이라 재미가 쏠쏠하다.
촛대바위에서 돔바위까지, 조망과 암릉의 향연
촛대바위는 지력산 종주 코스의 백미다. 거대한 주상절리 기둥이 신전의 열주처럼 솟아 있는데, 화산암으로 이뤄진 이 암봉들은 중생대 백악기, 약 1억 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사면이 수직 절벽이라 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서쪽 바위 사이로 표지기가 달린 길이 나 있어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촛대봉 정상은 의외로 넓은 암반 지대라 쉬어 가기 좋고, 건너편으로 선동산과 평야 지대, 서해랑길 11코스 해안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빼족산(300m)은 뾰족하게 솟은 모양새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정상에는 돼지저금통을 닮은 복돼지바위가 있는데, 사진スポット으로 제법 재미있다. 이 지점부터는 세방선착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 풍경과 동석산 큰애기봉, 가사군도의 섬들이 계속 이어져 걷는 내내 감탄사가 나온다. 가사도는 광맥을 품은 섬으로도 유명한데, 일제강점기부터 금과 규석을 채취했고 최근에는 수백억 원대 금광이 발견되기도 했다.
돔바위는 단봉낙타의 혹처럼 우뚝 솟은 암봉으로, 지력산 종주 코스의 끝판왕 조망처다. 눈앞을 가리는 게 하나도 없고, 멀리 조도군도와 가거도, 흑산도까지 시야가 거침없이 열린다. 해산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0.5m 지점에 산림생태관리센터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니, 여기서 안전하게 하산하면 된다.
서울에서 진도 지력산 가는 법과 산행 뒤 맛집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진도공용터미널行 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 4회(06:00, 08:10, 16:00, 17:10) 운행하며, 우등 요금은 4만 900원, 소요 시간은 4시간 40분이다. 진도공용터미널에서 군내버스(셋방/마세 행)로 갈아타면 와우리까지 약 1시간이 걸리고, 하루 6회(07:20, 08:20, 10:30, 13:00, 16:00, 18:20) 운행하며 요금은 무료다.
산행을 마친 뒤에는 진도읍에 있는 뱃고동 식당의 뜸부기 갈비탕이 별미로 꼽힌다. 뜸부기는 톳과 달리 아직 양식이 되지 않는 귀한 해조류인데, 진하게 끓인 육수에 한우 갈비와 함께 나온다. 1인분 1만 3,000원이고 12가지 밑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진다. 임회면 미르길 4구간에 있는 굴포식당은 40년째 한자리를 지킨 식당으로, 메뉴는 쫄복탕 하나뿐이다. 인근에서 잡힌 쫄복만 사용해 식감이 좋고 든든하다. 다만 잔가시가 있으니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은 피하는 것이 낫다.
지력산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산이라 불편한 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적고, 자연 그대로의 암릉과 조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가시덤불과 잡목을 뚫는 고생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면, 전라도의 숨은 명산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