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직장인 오은수의 일상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다. 도시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정이현 작가는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면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직장생활 7년차, 결혼을 고민하기엔 애매하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지친 나이. 그 경계에 선 인물이 던지는 질문들은 2000년대에 출간된 소설임에도 지금의 30대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른한 살 오은수는 왜 우리의 이야기인가
오은수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저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이 평범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다. 은수는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세 명의 남자, 윤태오와 남유준, 김영수 사이에서 주저하는 모습은 "마음 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세 개의 보기들에는 각각 잉여와 결핍이 담겨 있다"는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은수는 단숨에 답을 고르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밤, 세상에서 가장 우유부단한 인간 오은수가 내린 중차대한 결정"이라고 말하며 선택을 유예한다. 이 장면은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감정일 것이다. 인생의 중대한 선택 앞에서 애써 결정을 미루던 순간, 그리고 그 미룸 자체를 하나의 결정으로 포장하던 순간들.
이 소설의 제목이 가진 아이러니도 여기서 드러난다. '달콤한'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도시의 삶은 달콤하기보다는 팽팽한 긴장과 고독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고 적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사람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새로운 고독이 찾아온다는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 사이, 그 애매한 경계에서
이 소설의 중심에는 결혼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서른한 살의 여성에게 결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은수는 결혼을 인생의 정답처럼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켜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2000년대 중반에 쓰였지만, 지금의 30대 여성들이 느끼는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정감을 원하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잃게 될 자유를 생각하면 선뜻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 은수의 고민은 시대를 넘어 우리 곁에 있다.
작가는 또한 "남겨지는 자보다야 떠나는 자가 우월한 법"이라는 말로 이별의 감정을 다룬다. 회사를 그만두는 장면에서 은수는 2년여 동안 앉아 있던 초라한 의자와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별은 연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직장과, 사람과, 그리고 어쩌면 과거의 나 자신과도 끊임없이 이별하고 있다.
도시적 삶의 코드, 그리고 외로움의 정체
정이현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집과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가까이 있어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낀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를 관통하는 핵심 코드다.
-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관계가 새로운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순환 구조
- 타인의 문제에는 날카로운 판단을 내리면서도 자신의 인생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는 모습
-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흔들리는 확신들, 그리고 그 흔들림을 감추기 위한 가면들
작가는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소설 속 은수의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이유는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2005년 10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모아 엮은 것이다. 등단 이후 첫 장편소설임에도 등장인물과 문체, 내용, 형식 모든 면에서 '도발적이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수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 사는 한 여성의 내면 풍경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Q. 이 소설은 어떤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가?
서른을 전후한 시기의 고민, 특히 연애와 결혼,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외로움을 경험해 본 독자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을 기대한다면 다소 밀도 있는 문장과 내면 묘사에 낯설 수 있다.
Q. 2000년대 소설인데 지금 읽어도 공감이 될까?
오히려 지금 읽으면 더 공감되는 지점이 많다.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 도시에서의 외로움, 인간관계의 피로감은 2020년대의 30대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다. 다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데이트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부분에서는 시대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Q.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제목 자체가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도시의 삶은 달콤하기보다 팽팽하고 고단한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도시적 삶의 양면성을 제목으로 압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은수의 이야기는 2006년에 책으로 엮였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소설이 다루는 감정들이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한 살 은수가 느꼈던 혼란과 고독,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의지는 오늘의 30대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장들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