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천국'을 읽고 나니, 왜 '행복'이 아니라 '욕망'인지 알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신작 '영원한 천국'은 죽음을 제거한 가상세계 '롤라'에 들어선 인물들이 영원한 삶을 손에 넣은 뒤 오히려 더 깊은 불안과 상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영원한 행복'이라는 전제가 얼마나 위험한 착각일 수 있는지를, 한 인물의 방황과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 자격이 있나"라는 질문보다, "영원히 산다는 것이 과연 행복의 조건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영원한 천국, 그곳은 정말 천국일까
소설 속 '롤라'는 인간의 육체를 제외한 모든 생각과 감정, 감각이 정보화되어 업로드되는 가상공간이다. 그곳에서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며, 죽으면 다른 삶을 선택해 다시 살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벌레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기억에 의존해 세상이 구성되고, 여러 형태의 삶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영원한 천국'이다.
이 설정 자체는 익숙하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 공간에 이식해 영속시키는 이야기는 다양하게 다뤄져 왔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는 여기에 '작가를 통한 세계 프로그래밍'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더한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기획하고 설계해서 살 수 있다는 측면이 이야기에 새로운 긴장감을 부여한다.
문제는 그렇게 손에 넣은 영원함이 등장인물들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해상이 제이를 잃고 무한의 세계를 떠도는 방황은 '영원'이라는 말이 지닌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끝없는 반복과 기억의 누적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빠른 전개와 강렬한 몰입, 하지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정유정 작가 특유의 휘몰아치는 서사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523페이지라는 분량이 단편처럼 느껴질 정도로 숨 쉴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을 읽었던 독자라면 그 긴장감이 얼마나 강렬한지 잘 알 것이다. 이번 작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유정의 소설을 한강의 소설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차이는 분명하다. 정유정의 소설은 동적이어서 커다란 사건과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등장인물들은 급박한 전개에 발을 맞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의 내면에 집중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문장은 단문 위주가 될 수밖에 없고, 사용되는 단어도 통속적인 문화에 녹아든 단어다.
이런 특징은 '영원한 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흥미진진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도중에는 너무 흥분되고 몰입되지만, 끝나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 작품도 비슷하다. 몰입해서 읽었건만, 작품이 가진 세계관이나 인물들의 캐릭터는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잊히기 시작한다.
롤라의 세계, 공감이 가지만 아쉬운 과학적 설계
작품의 핵심 소재인 가상세계 '롤라'는 정유정 작가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듯, 그녀가 전문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야다. 첨단과학 또는 공상과학에 가까운 이 세계관은 비전문가로서의 공부와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과학의 발달, 그리고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과 영원을 향한 소망이 잘 버무려져 탄생한 주제라는 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과학자가 직업인 독자의 관점에서도 이 가상세계는 손에 잡히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으며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면이 있다. 기술에 대한 실현 가능성이나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한계를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핵심적으로 전제가 되는 롤라의 세계관 자체는 인간의 욕심이 실제로도 개별적 인격과 이성의 불멸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굳이 이 주제를 다루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유정 작가의 고유한 매력은 대중성과 강렬한 서사다. 차라리 도스토옙스키처럼 지극히 통속적인 주제, 이를테면 돈, 치정, 살인처럼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공간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소설을 써 내려가는 것이 그녀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뻔한 상황과 뻔한 사건 속에서도 뻔하지 않은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본성을 까발리는 그녀의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번 작품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영원한 행복 대신,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
소설은 영원한 천국을 향한 제한된 티켓을 갖기 위해 투쟁하고 그 세계로 입성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화염을 향하는 불나방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욕망 때문일까. 하지만 작품은 오히려 죽음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유한한 인간의 육체와 에너지, 그에 종속된 관념이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그 행복이 계속 곁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변하더라도, 그 행복의 지점을 타격한 순간과 경험이 찰나였더라도, 그랬기 때문에 의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점점 이런 자연스러운 평가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을 꿈꾸는 대신, 유한하기 때문에 더 소중한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큰 화두다.
Q. '영원한 천국'은 '완전한 행복'의 후속작인가요?
네, '영원한 천국'은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정유정 작가는 이 전작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려왔습니다.
Q. 정유정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7년의 밤'과 '완전한 행복'을 높게 평가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작품이 기존 작품들의 정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빠른 전개와 몰입감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Q. 과학이나 공상과학에 약한 독자도 읽을 수 있을까요?
작품의 주요 소재가 가상세계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과학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입니다. 다만, 가상세계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