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소식에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트레일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써코니 페레그린 13을 꺼내 신었다. 걱정과 달리 눈길에서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12km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페레그린이 눈길에서 어떤 성능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실제로 달릴 때 주의할 점을 정리한다.
눈길에서 페레그린이 미끄러지지 않는 이유는 설계 자체가 다르다
페레그린 13의 아웃솔은 다른 트레일화와 확연히 다르다. 4mm 깊이의 러그(돌기)가 지그재그로 배열되어 있어 눈 위에서 스노우 체인 같은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트레일화가 3-3.5mm 러그를 사용하는 반면, 페레그린은 4mm로 15-20% 더 깊다. 이 미세한 차이가 눈길에서 그립력을 결정한다.
러그 간격은 7mm 정도로 벌어져 있어 눈이 러그 사이에 끼어도 쉽게 털려 나간다. 이런 구조 덕분에 눈이 쌓인 내리막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
다만, 마른 흙길 접지력은 일반 트레일화보다 약간 낮다. 깊은 러그가 마른 흙에서는 오히려 접촉면을 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레그린은 올라운드보다 겨울·악조건 전문에 가깝다. 눈 오는 날만 전용으로 쓰고, 마른 계절에는 다른 신발로 갈아신는 걸 추천한다.
눈길 트레일에서 페레그린의 실전 주행 데이터 3가지
3년간 페레그린 11, 12, 13을 번갈아 신으면서 체득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착화감 발로 땅을 읽는 능력이 향상된다
페레그린의 미드솔은 PWRRUN이라는 독자적인 폼 소재를 사용한다. 이 소재의 경도는 Shore C 기준 약 45-48 정도로, 일반 트레일화(50-55)보다 10% 이상 부드럽다. 부드러운 미드솔은 눈길에서 발바닥이 지면의 요철을 더 잘 감지하게 해준다. 쉽게 말해 발로 땅을 읽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안정성 내리막에서 발가락 통증을 확 줄여준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면 대부분의 트레일화는 발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생긴다. 페레그린은 발가락 부분의 토 박스가 넓게 설계되어 있어 발가락이 신발 앞쪽에 부딪히는 걸 방지한다. 실제 측정 결과 페레그린의 토 박스 너비는 100mm로, 같은 사이즈의 나이키 와일드호스(95mm)보다 5% 더 넓다. 눈 덮인 내리막에서 발가락이 찧는 통증을 확 줄여주는 요소다.
방수 및 보온성 눈이 신발 안으로 스며드는 걸 막아준다
페레그린의 갑피는 메쉬와 TPU 필름이 혼합된 구조다. 2024년 1월 영하 10도에서 2시간 동안 달린 적이 있는데, 신발 안은 거의 건조한 상태로 유지됐다. 다만 기본적으로 방수 기능이 있는 건 아니므로, 2-3개월에 한 번씩 실리콘계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게 좋다.
눈길 러닝에 딱 맞는 페레그린 사이즈 고르는 법
써코니 페레그린은 사이즈가 애매하다는 얘기가 많다. 정사이즈, 반업, 한업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직접 세 가지 사이즈를 모두 신어본 결론을 공유한다.
눈길 트레일 러닝에서는 양말을 두 겹 신는 경우가 많다. 안쪽에 기능성 이너삭스, 바깥에 두꺼운 울 양말을 신으면 발볼이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이 상태에서 정사이즈를 신으면 발가락이 토 박스에 닿아 10km만 넘어가면 통증이 생긴다.
- 반업(275mm 기준): 가장 무난하다. 발가락 앞에 엄지손가락 너비(약 1cm) 정도 여유가 생기고, 발볼도 조이지 않는다. 페레그린 13부터 힐 카운터(발뒤꿈치 보강재)가 강화되어 발이 덜 움직인다.
- 한업(280mm): 너무 크다. 발가락 앞에 2cm 이상 여유가 생기면서 달릴 때 발이 신발 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안정성이 오히려 떨어진다.
- 정사이즈: 발볼이 좁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평균보다 발볼이 넓은 편(9.5cm)이라면 반업이 더 편하다.
겨울 트레일을 생각한다면 반업을 추천한다. 양말 두 겹 신는 걸 고려하면 정사이즈는 리스크가 크다.
눈길에서 페레그린을 최대한 활용하는 3가지 주행 팁
보폭을 10-15% 줄인다
마른 흙길에서 평소 보폭이 1m라면, 눈길에서는 85-90cm로 줄인다. 보폭이 짧아지면 발이 지면에 닿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접지력을 확보할 시간이 생긴다. 페레그린의 깊은 러그는 이 짧은 접촉 시간 동안 최대한의 그립을 제공한다.
발 앞쪽(전족부)으로 착지한다
보통 달릴 때는 발뒤꿈치나 중간 부분으로 착지하는데, 눈길에서는 발 앞쪽으로 착지하는 게 유리하다. 이유는 발 앞쪽으로 찍으면 러그가 눈 위를 더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페레그린의 앞쪽 러그가 특히 깊게 설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너링에서 체중을 바깥쪽 발에 싣는다
눈길에서 코너를 돌 때 안쪽 발에 체중이 실리면 미끄러지기 쉽다. 바깥쪽 발로 체중을 지탱하면서 안쪽 발은 가볍게 디디면 중심을 잡기 수월하다.
눈길 트레일화 관리 페레그린을 오래 쓰는 법
눈길에서 쓴 트레일화는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고, 그 물이 신발 내부에 스며들면 냄새와 곰팡이가 생긴다.
- 달리고 나면 바로 신발 끈을 풀고 깔창을 뺀다. 30분 간격으로 신문지를 갈아주면 2-3시간 안에 완전히 건조된다. 히터나 직사광선은 절대 금물. 미드솔 폼(PWRRUN)이 열에 약해 변형될 수 있다.
- 아웃솔 러그 사이에 낀 돌이나 자갈을 제거한다. 페레그린의 러그는 깊어서 작은 돌이 잘 끼인다. 방치하면 러그가 손상되거나 접지력이 떨어진다. 달릴 때마다 5분 정도 투자해서 꼼꼼히 제거하고, 손이 잘 안 닿는 곳은 칫솔로 긁어낸다.
- 미드솔 점검은 6개월마다 한다. 신발을 평평한 바닥에 놓고 엄지손가락으로 미드솔을 눌러본다. 새 신발은 5-6mm 눌리는데, 1년 이상 지나면 2-3mm밖에 안 눌린다. 페레그린의 수명은 평균 800-1,000km 정도다.
Q. 페레그린은 마른 계절에는 못 쓰나요?
마른 흙길에서 접지력이 일반 트레일화보다 낮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완전히 못 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장거리(25km 이상)에서는 미드솔이 부드러워 발바닥이 아플 수 있다. 페레그린은 10-20km 내외의 겨울 코스에 최적화되어 있다.
Q. 아이젠 대신 페레그린만 신어도 괜찮을까?
아이젠은 무게가 발목에 부담을 주고, 아스팔트 구간이 섞인 코스에서는 오히려 위험하다. 눈이 5cm 이상 쌓이거나 빙판이 확실한 코스라면 아이젠이 낫지만, 일반적인 신설이나 약간 얼어붙은 흙길에서는 페레그린만으로 충분하다.
Q. 페레그린 13과 16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페레그린 16은 13보다 갑피가 더 통기성이 좋아졌고, 미드솔이 살짝 단단해졌다. 다만 기본 설계 철학은 같아서 눈길에서의 그립력은 큰 차이가 없다. 13이 아직 팔린다면 가격 대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